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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품에 대한 지식!/자본주의를 읽고

도덕감정론 상호동감의 기쁨 1~4 부분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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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심지어 죽은 사람들과도 동감한다.


그러나 우리는 고인의 입장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 그들이 곧 겪게될 사후세계는 무시하면서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는 것에만 반응을 한다. 과연 그렇다면 우리는 곧 죽게 될 사람들을 온전히 공감을 할 수 있는가? 하지는 못할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어떤 기분일지 차근 차근들어봐야할것이다. 우리는 지레 그들이 햇빛을 빼앗기고, 그들의 살이 벌레들의 먹잇감이되며 모든이에게 망각되어 가는 삶을 살아갈 것을 슬프게 생각하고 비참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런식으로 심지어 죽은 사람들과도 동감한다.  이미 죽은자들은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도 생각할 수도 없을 텐데말이다. 


우리가 공허한 경의를 통하여 우리의 자신의 비통함을 위해서, 그들의 불행에 대한 슬픈 생생하게 간직하려고 일부러 노력한다. 우리의 동감이 고인에게 어떤 위안도 제공할 수 없다. 그로인해 위로하는 자들의 비극을 더우 가중시키는 것 같다. 


고인의 감정은 그들의 위로와 상관없이 여전하다 방해받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의 살아있는 영혼을 그들의 죽어있는 시신에 불어넣고, 그리고 나서는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을 느끼게 될지를 생각함으로써 생각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신의 사망에 관한 예상이 그렇게 두렵게 느껴지고 사실 우리가 죽은 후의 상황은 우리에게 아무런 고통도 줄 수 없는 것이 분명한데 그렇게 우리는 죽은 후의 삶을 두려워 한다. 


인성의 가장 중요한 원리들 중 하나가 이로부터 기인하는데 , 그것은 곧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원리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행복에 대해서는 위대한 맹독이지만, 인류의 불공정한 행위의 위대한 억제자이다. 다시 말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한편으로는 개인을 괴롭히고 억누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를 보위하고 보호한다. 

(아마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의 그들의 불공정하고 비겁한 행위의 벌을 받지 않을까 염려하여 자제하게 되고 이를 통해 사회를 보위하고 보호한다고 생각한듯 하다.)


그의 기쁨이 전적으로 동석자들의 동감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추가적인 즐거움으로부터 생겨나는 것 같지는 않으며, 그의 고통 또한 그가 기대하던 기쁨을 맛보지 못하게 되었을 때의 실망에서 생겨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두가지 모두 어느정도 작용을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우리가 좋아하는 시를 아무리 1000번을 보아도 더이상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나 시의 경이와 찬탄을 누군가와 함께 공유하거나 우리자신의 눈이 아니라 그의 눈에 어떠헥 비쳐지게 될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가 기뻐하는 것에 대한 동감을 통하여 기뻐하게 된다. 그의 눈에 어떻게 비쳐지게 될지를 생각한다. 그러나 기뻐하지 않으면 오히려 무안해지고 난처하게 된다. 


그들의 기쁨에 대해 표명하는 동감은 분명히 나의 기쁨에 생기를 불어넣어 줌으로써 나를 더욱 기쁘게 해주지만, 그들이 나의 슬픔에 대해서 표명하는 동감은 단지 나의 슬픔을 생생하게 할 뿐 어떤 기쁨도 줄 수 없다. 


기쁠 때 동감해주는 것은 더 생기를 넣어주지만 슬플 때의 동감은 더 생생하게 만들어줄 뿐 기쁨을 제공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여야하는가? 슬픔에 대한 동감은 생생하게 만들어주기는 하지만 슬픔을 경감해주기는 한다. .... 


어떻게 슬퍼있을 때 그래도 나와 같이 슬퍼해주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거의 받아들일 수 있는 유일한 유쾌한 감정을 마음속에 넌지시 심어줌으로써 슬픔을 경감시켜 준다. 


따라서 우리가 알아야 할 점은, 우리가 친구들에게 더욱 전달하고 싶어하는 감정은 우리 자신의 유쾌한 감정보다도 불쾌한 격정이라는 것이며, 우리가 친구들의 동감으로부터 더 큰 만족을 얻는 것은 우리의 유쾌한 감정에 대한 친구들의 동감이 아니라 우리의 불쾌한 감정에 대한 친구들의 동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불쾌한 감정에 대하여 친구들의 동감을 얻지 못했을 때 더욱 큰 충격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위이야기가 이어져서 기쁠 때는 동감해주지 못하더라도 기쁜 상태이지만 슬프거나 불쾌한 감정일 때 우리는 왠지 불쾌한 감정에 대한 동감을 해주기를 바라며 말을 할 것이다. 우리는 그 불쾌한 감정 분노와같은 표현에 동감을 받지 못했을 때 충격을 받는데..


(그래서.. 친구들이 분노하거나 화가나는 일에 대해서 나한테 이야기를 해주는구나. 그렇지만 그런 감정에 별로 동감해주고 싶지는 않다. )


불행한 사람들은 자신을 비통하게 된 이유에 대해 자신의 하소연을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았을 때 매우 큰 위안을 받는다. 


그 사람의 동감의 감미로움은 그의 동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그들이 자신들의 비통함을 다시 생생하게 상기해야했던 고통을 보상하고도 남기 때문이다.  이와는 반대로, 불행한 사람들에 대하여 줄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모욕은 그들의 재난을 경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친구의 기쁨에 무관심한 듯 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단지 무레한 행동에 불과하지만, 친구가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이야기할 때 진지한 태도로 경청하지 않는 것은 정말로 엄청나게 비인간적인 행동이다. 동감, 공감을 한다는 것은 이처럼 중요하다. 친구를 사귀는데 있어서도 이렇게 공감을 잘 해주는 친구를 만나야 오랜 벗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슬플 때는 같이 슬퍼해줌으로써 슬픔을 나눠주고 기쁠 때는 같이 기쁨을 공유해줌으로써 배가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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